주세 2009.09.04 05:28 전체공개

<<괴짜사회학>>출판 기념 대담회 후기.

어제(09년8월28일 금요일) "<<괴짜 사회학>>출판 기념 대담회"에 다녀왔다. 덕분에 이제껏 한 번도 안 빠졌던 학원을 제꼈다. 내가 너무 존경해 마지않는 김규항과 진중권님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루 전에 교보에 가서 책도 샀다. 관련 내용을 이야기하면 나도 알아들어야 하니까... 다 읽진 못했는데 다행히 대담회는 책 소개 보단 대담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 같다.
대담자는 김규항, 진중권, 우석훈, 홍기빈님까지 네분이셨다. 진중권님은 최근 이명박 정권과 마찰이 많아 거의 모든 직장 - 강사직조차 -을 짤리고 몇 개의 소송에 휩싸이는 등 고난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밝고 가볍게 자리했다. 김규항님은 내 예상보다 훨씬 남자다운 모습이었다. 몸매도 탄탄하고 목소리나 말투까지 글에서 느꼈던 것보다 조금 더 '거친' 느낌이었다. (나는 김규항님이 굉장히 조용하고 조곤조곤하게,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 하는 사람일 줄 알았다. ^^;;) 홍기빈님은 멀리서 보면 살찐 소지섭 느낌이었다. (내 눈이 안좋아서 그런가..)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목소리도 굵고 듣기 좋더라. 우석훈님은 사차원.. “어른들이 하라는 거 다 반대로 하고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만 계속하면 절대 보수한테 안 진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멋진 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대담 내내 ‘내가 정말 잘 살고 있구나, 내가 틀린 게 아니구나.’ 라며 위안이 됐다. 27살에 쌩뚱 맞게 이종격투기 선수를 목표로 하고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배우는 장래의 심리상담사... 계속 해서 나아가곤 있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과 말을 전혀 아랑곳 않을 만큼 단단하진 않다. 특히 "귀한 시간 낭비하고 있네" 라며 비꼬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운이 빠지고 마음이 상할만큼 여전히 어리다. 가까운 사람들의 진심어린 충고와 걱정, 안쓰럽게 보는 마음... 심지어 말로는 '멋지다.'고 응원해주지만 나랑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외로움 느낀다. 주위의 많은 것들이 '나 지금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던져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멋진 사람들과의 만남은 꼭 필요하다. 일상에서 생기는 수많은 상처와 의심들을 감싸며 도닥여주니까.... 괜찮다고, 잘 살고 있는 거 맞다고. 더 멋지게 살라고..
불안.
“가난은 왜 발생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김규항님은 ‘불안’이라고 답하셨다. 절대빈곤국에서 벗어난 지 한참이나 지난 우리네 삶이 여전히 가난한 건 불안하기 때문이란다. “가난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 불안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는 역설이다(물론 그가 현실적 가난을 경시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 근거로 권정생 선생님의 삶을 소개하셨다. 아주 많은 인세를 받으시는 분이지만 한 달에 고작 30만원의 생활비로 여유롭게 사셨던 분. 김규항님은 “뱀이 집 밖과 안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생태적인 환경”에서 사는 걸 가장 편안하게 여기셨던 분의 삶을 ‘88만원 세대’와 대비했다. 그렇다고 모두 그분처럼 살아야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핵심은 ‘가치관의 전복’이다.
우리는 위로 향하는 가치관을 갖고 산다. 양식있는 사람조차 대부분 ‘상향적 기준’을 기본으로 삼은 채 부러 노력해서 하향을 선택한다. 김규항님은 그 기준의 전복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부자인게 좋지만 타인과의 평등을 위해, 평화를 위해 욕심을 버린다.’는 게 아니라 ‘가난이 더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나에게 편하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말이다. 어려운 말로 “자발적 가난”이라는 건데, 이것의 의미는 굉장히 크다.
나를 예로 들자면,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철저한 입시위주의 교육에 매진하는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서울 명문대를 목표로 집, 학교, 학원, 독서실만 왕복하며 살았다. 상품 가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 돈 안 되는 모든 것들 - 음악, 미술, 문학, 철학, 종교 등등은 모두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삶이 무의미한 반복으로 채워져 너무 괴로웠지만, “잘살기 위해서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언제나 따라다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일대 목표였던 대학 진학 후에는 어떤 것에도 열정이나 설렘을 느낄 수가 없었다. 꽤나 오랫동안 허무했고, 그래서 많이 슬펐다. 삶이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위로 올라가면 정말 행복할까? 지독하게 허무했다.
어느 정도 가치관의 전복이 이뤄진 지금, 나는 진짜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하루 4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20시간이 모두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로 채워진다. 전역 후 태국에서 무에타이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가치관의 전복 때문이다. 중고딩때 바랐던 엘리트로 살기 위해서는 절대 일탈을 꿈꿀 수 없었겠지만, 이제 내 가치관은 ‘부자가 아니라도 좋아. 내가 진짜 바라는 것들로만 삶을 채울거야.’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비주류 직업에 속하는 심리상담사를 장래 직업으로 삼은 것부터 해서 패션디자인, 일러스트 공부 등등등.. 내가 상향적 가치관을 버린 후 선택할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로 인해 느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 자신감은 이전까지 어떤 것에도 얻을 수 없던 행복이다.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하루가 시작되는 게 너무나 설레고 행복해서 저절로 눈이 떠진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설렘으로 가득한 일과를 계획하면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른다. 저절로 신에게 감사하고 지구에 고마워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것에 열정을 느끼게 된다. “가난해도 좋아,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어.”라고 다짐한 순간부터 오히려 더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생겼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던 불안에서 해방된 것이다. 정렬된 길을 따라 나설 때보다 백배는 더 선명하게 내 미래가 보인다. 여전히 행렬 안에서 계단 밟듯 살아가는 많은 친구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미래가 보이냐고, 확신에 차서 생활하고 있냐고.. 1분 1초가 아까울 만큼 열정적으로 살고 있느냐고. 진정 자유롭게 선택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거대한 틀을 벗어나기 두려워, 불안감에 끌려가고 있는 것인지. 모두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ps : 나도 가치관의 전복이 제대로 다 이루어진 건 아니다. 가난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발적 가난'의 현실적 어려움을 느껴보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등따시고 배부른자의 팔자 좋은 한때 호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위만 바라보며 살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이전에 비해 100만배 더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ps 2 : 윗글로 보면 김규항님이 마치 개인의 변혁만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사회적 변혁 못지 않게 개인적 변혁도 중요하다는 걸 말씀하시는 것. 다만 대담회에서는 다른 분들께서 사회에 대해 많이 말씀하셨으니까 그부분에 대해선 패쓰한 정도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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