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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님의 싸이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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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좌파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사민주의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체제 내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쳐나가자는 것. 사실 그것도 태생적 한계(?)를 감안해서 많이 양보한 것이다. 나는 자본의 천국에서 아주 많은 혜택을 입고 자란 인간이기 때문이다
. 헌데, 그마저도 착각에 불과할 거라는 어떤 분의 지적이 있었다. (ㅡ.ㅡ;;)
그래서 다시 고민한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예전에 몽골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물도 귀하고 먹을 것도 귀한 불편한 나라에 가서 고된 경험을 해보면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단 며칠 만에 깨달았다. 그건 '쇼'에 불과했다. 잘 못 먹고 잘 못 씻고 하는 일련의 불편함들은 나에겐 하나의 이벤트다. 분명한 끝이 보이는 '행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행은 끝이 없다. 좁아질 수 없는 괴리감을 느꼈다.
혹여 우리집이 지금 당장 쫄딱 망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는 계급적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았다. 날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분명 다를 것이다. 내가 배운 심리학적 상담론으로 판단컨대 나는 굉장히 건강한 심리상태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조차 계급적 차이에서 기인한 혜택일 가능성이 크다. 잘 먹고 잘 배웠기 때문에 이 더러운 세상을 '더럽다.'라고 말할 수 있는 머리를 갖게 되었다. 내가 아주 가난하고 폭력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책은 커녕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는 곳에서 자랐다면 과연 지금 같은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을까? 대학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주제로 긴긴 고민과 자기 성찰 끝에 나만의 대답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살 수 있었을까?
그게 나의 '계급적 한계'라는 걸 이해한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조차도 풍요로운 계급적 기반위에 세워진 '이상적 정의'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는 늘 진짜 사회주의자는 커녕, 사민주의자도 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 진짜 제대로 된 사민주의자는 뭘까. 제대로 된 사회주의자는 뭘까? 진짜 좌파는 뭐지?
나는 맑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믿는다. 세계는 정반합 과정을 걸쳐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며 자본주의는 결국 붕괴도고 사회주의, 이상적 공산주의 체제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건 내게 너무나 자명해보인다. (아니라고 믿는 인간들은 얼마나 멍청하고 한심해 보이는지 모른다. ㅡ.ㅡ;;)
나는 누구보다도 인간에 대해 비관하지만 또한 누구보다도 인간을 믿는다. (이성으로 비관해도 의지로 낙관하고 있다.. ㅡ.ㅡ;)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장 기본 중 하나가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기도 한다. 약자가 아닌 나는 마땅히 이 사회의 약자에게 주의를 기울여야하고, 그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것이 사회적 지배계급에 의한 불공정한 분배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체제 변혁은 마땅한 이치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가장 왼쪽에 있는 정당을 지지했고 어떤 이슈를 들고와도 가장 왼쪽에 있는 의견들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왼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너무 당연하고 정당하기 때문에' 언제나 늘, 가장 왼쪽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사민주의자도 못되는 걸까? ㅡ.ㅡ;;;
김규항님은 좌파에 대해
"어지간히 양식있는 자유주의자들조차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접고가는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부여잡는 사람들이다. 좌파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진중권 씨가 말하듯 ‘폐기된 이념적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죄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편해도 되나하는 불편한 마음이야말로 좌파의 출발인 것이다. 그리고 그 불편한 마음을 기부나 자선 같은 한줌의 동정심으로 '해소'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변화시키려 '행동'하는 것, 그게 좌파의 내용이다."
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실존적 존재다. 실천으로 본질이 정의된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보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금은 고작해야 공부방 교사지만, 사회활동은 점점 더 확대 될 것이다. 고통의 현장에서 노동자들,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활동을 분명히 펼쳐 나갈 것이다. 그다지 멀지 않았다. 아마도.. 2년 이내가 되지 않을까.... 그 때도 나는 여전히 폭력은 무서워할 것이고 제대로 된 좌파라고 말할 수는 없을 지 모른다. 난 전태일이나 체게바라처럼 목숨걸고 변혁을 위해 싸우진 못할테니까.... 뭐 그래도...난 내가 믿는대로 살기 위해 노력할거다. 아주 작고 사소해서, 그리고 빈약해서 티도 안날테지만, 난 죽을때까지 반자본주의 운동하며 살거다. (1인시위가 됐든, 반 자본주의 창작활동이 됐든... 내가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반자본주의 놀이하며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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