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 2010.12.23 09:24 전체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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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사진관>>이라는 책을 읽다 인도 사람들은 못말리는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글을 봤다.
상상하지도 못한 여러가지 질문을 여행자에게 던져 당황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내 기억에 어릴 적 나도 꽤나 호기심이 많았었다.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에게 했던 질문 중 기억나는 것 몇가지를 적어보면
"만유인력의 법칙이 사실이라면 왜 지구와 달, 태양은 충돌하지 않는 가? 우주는 모두 한 점으로 모여야하지 않나?
끌어당기는 힘이 '중력'이라면 외부로 튕겨져 나가려는 '공전하는 힘'은 무엇으로부터 발생한 것인가?"
"빛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고 하는데, 생각의 속도보다 빠른가? 즉,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생각함과 동시에 내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반응은 즉시 일어난다. 스타팅과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데도 과연 빛이 더 빠른가?"
"34만 km 가 넘는 긴 장대가 있다고 치자. 34만 km의 장대의 한쪽 끝을 움직이면 34만km의 다른 한쪽 끝은 그 즉시 움직인다. 1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에너지가 34만km를 이동하게 된다. 빛의 이동속도보다 빠른게 아닌가?"
"지구는 평평해보이지만 사실은 둥글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다 곡선이 아닐까?"
.. 등등 뭐 이런 쓸데 없는 질문들이었는데, 내가 이런 것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만한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정답을 듣지 못했다는 게 기억에 남아서 몇 번이고 이렇게 회상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대답들(고교 과학시간이면 다 배운다)도 있는데 그걸 듣지 못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중1때 쯤.. 물었는데.. 그 선생님들 참...;; )
어쨌든, 호기심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공부하기 바쁜데 성적에 도움 안되는 것에 시간낭비 할 수는 없었다. 그저 교과서에 나온 것들만 공부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며 시간은 흘렀다.
지금 내가 초,중,고를 죽은 시간으로 회상하는 이유가 바로 그점이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건 점점 더 호기심과 상상력을 잃는 과정이었다. 긴~ 고딩 시절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난 다시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삶에 대해서, 그리고 진실에 대해서. 초, 중, 고에서 이미 끝냈어야할 사춘기적 고민을 20살에 시작해 지금 - 28살에 어느정도 매듭을 지었다. 늦었고 또 너무 길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런 고민조차 해볼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
매주 월요일 지역 아동 센터에서 놀이교사를 하고 있다. 애들은 나에게 "글짓기 쌤"이라고 부르지만 항상 축구나 얼음땡,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따위의 놀이를 같이 할 뿐이다. 우리의 메인 운동장은 문정 늘푸른 공원인데, 즐겁게 놀고 있다보면 꼭 동네 아이들 서넛이 주변에서 기웃거린다. 남자아이들은 혹여나 같이 축구를 끼워줄까 괜히 축구 공을 건드리기도 하고, 여자아이들은 얼음땡 따위의 놀이는 자기도 잘한다며 (다 들리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는다.
내 마음 같아서야 항상 그 아이들도 끼워서 같이 놀고 싶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공부방 아이들이 저마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왔잖아요! 우리끼리 하고 싶어요! 너무 사람이 많아요!, 쟤네랑 놀기 싫어요!!" 한 목소리로 '집단 정체성'을 주장하는 공부방 아이들에게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저 "같이 놀면 더 재밌잖아, 같이 놀자~"라고 부탁할 수 밖에.
짐작하건데 우리 공부방 아이들이 공원에서 뛰놀 때마다 나와서 기웃거리는 아이들은 그 시간에 할 일이 없는 거다. 남들처럼 학원이나 공부방에 나가지도 않고 같이 놀 사람도 마땅히 없는 아이들(대부분 학원에 가니 같이 놀 아이가 없다.); 그 중에 '00'라는 애가 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데, 그 아이가 내 눈에 띈 건 11월 어느 날이었다.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되보이는 중학생 앞에서 잔뜩 위축된 어깨로, 하지만 두 눈은 똑바로 그 중학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중학생은 00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고 00도 지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당장 달려가 둘을 뜯어말렸지만, 사실 그 때부터 난 00에게 반했다.
보통 소년이 그렇듯 00 역시 또래의 여자애들보다 덩치가 작을정도로 왜소하다. 하지만 다부진 몸매, 곱슬거리는 머리에 작게 째졌지만 똘망똘망한 눈은 10년만 지나도 멋진 청년으로 꽤나 인기를 끌만큼 잘생겼다. 내가 특별히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그저 중학생한테도 대들만큼 무모해서도 아니고, 또래 애들보다 훨씬 축구를 잘해서도 아니다. 동네 슈퍼에서 40만원을 훔쳐서 파출소에 잡혀간적도 있었다는 아이들의 비난에 자신은 4만원도 안훔쳤었다며 애석한 변명을 했기 때문도 아니다.
00는 처음으로 내 질문에 대해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10살짜리 소년이었다.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록 진지한 대화에 대한 희망은 버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에 대한 개념도 안잡힌 아이들에게 '진지함'이란 그저 자기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00는 달랐다. '내 기분'을 떠나서 무엇이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인지 따져보려는 시도를 했다.(물론 그렇다고 실천하게 되는 건 아니다.) 그게 내 눈에 보였다. '옳은 것'이란 그저 "선생님이 옳다고 말하는 것"쯤으로 여기는 또래의 아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00가 '생각하기'를 꺼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10살 미만... 아니 그저 대부분의 초등학생 아이들을 만나서 대화하다보면 놀랄만큼 생각하는 길 싫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생각해보니.. 진지한 고민을 싫어하는 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다..) 관심이 다른 탓일 수도 있겠지만 한가지 주제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면 10에 9명은 결국 나몰라라하며 도망가버린다. 하지만 00는 그렇지 않았다. 추운 겨울 찬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계속 질문에 답을 찾으려 고민했다. 그 모습은 나에게 충격적일만큼 반갑고 대단한 것이었다.
내가 10살 때 누군가 나에게 지금 내가 던지는 것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봐줬다면... 삶을 사는 것이 그저 공부 잘하고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뽐내는 게 아니라는 걸,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남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임을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줬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록 00에 대한 관심이 끊이질 않는다. 1주일 뒤 00는 나에게 와서 이야기 했다.
"엄마한테 공부방 다니고 싶다고 얘기 했는데, 지금 돈 없어서 보내줄지 안보내줄지 모른데요."
..
다음에 00를 만나면 공부방이 어려우면 심심할 때마다 내 사무실로 놀러와서 나랑 놀자고 말해야겠다(그 아이 집과 우리 사무실이 가깝다).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00 어머니께도 전화드리고... 내가 다니는 독서토론모임에도 데리고 가고 싶다. 00가 나랑 같이 있을 때 내가 느끼는 즐거움 - 독서와 토론, 기타치는 것, 시를 읽고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기쁨, 운동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그깟 점수 따위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거 몸으로 느끼고 그들보다 백배 천배는 더 멋진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고 싶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절대 남들과 같아질 수 없다. 00는 분명 아주 멋진 사람이 될 거다.
여느 때처럼 월요일 오후, 공원으로 찾아온 00에게 물었다.
"00야, 지난주 정의롭게 보냈어?"
"..... 아직은요.. 선생님은요? "
"..ㅎㅎ 나도 아주 정의롭게 보내진 못했어. 계속 노력할거야."
스스로 '아직은' 정의롭지 못했다고 말하는 00를 보며 얼마나 뿌듯하던지...
.........
아직 00가 어떤 아이인지 모르지만,
'정의롭게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빛나던 그 애의 눈을 잊을 수 없다.
남들이 도둑놈이라는 둥, 불량 깡패라는 둥, 소년원에 갈거라는 둥 떠들어대도...
앞으로 10년 뒤에 00는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옆에서 지켜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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