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현 2012.02.14 23:14 전체공개

제레미 린 이야기 #1

아주 오래 전 마이클 조던, 피펜의 시카고 불스와 찰스 버클리의 피닉스 선즈가 맞붙던 시절 이후.. NBA는 점점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가 어느덧 조금씩 늘어가는 Jeremy Lin 이라는 농구 선수 뉴스와 관련 동영상을 보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스포츠의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드라마 같은 꿈의 이야기들이 나의 완전한 집중과 관심을 유발했다.
미국 그 중에서 뉴욕을 단 시간에 그렇게 열광하게 만든 제레미 린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는 기사 2개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모두 인용 기사이며, 많은 기사들 중 단 2개일 뿐이지만.. 가장 잘 작성된 글이라 생각되어 소개한다..
#기사 1#

[점프볼][서정환의 트래쉬토크] ‘황색돌풍’ 제레미 린이 무너뜨린 편견들
기사입력 2012-02-14
 
 

제레미 린의 황색돌풍이 거세다. 린은 단 5경기 만에 카이리 어빙, 지머 프레뎃, 리키 루비오의 영향력을 뛰어넘었다. 린의 도전은 단순한 농구경기가 아니다. 우리사회 모든 편견에 맞선 투쟁이다.
아이비리거는 성공할 수 없다
제레미 린은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하버드가 속한 아이비리그는 운동선수 장학금제도(athletic scholarship)가 없다. 세계최고의 수재들이 모여 학사기준도 매우 높다. 프로선수를 꿈꾸지 않는 순수 아마추어가 대부분이다.
반면 듀크, 캔자스 등 메이저컨퍼런스 대학들은 올아메리칸 슈퍼스타를 장학금을 주고 데려온다. 미국의 고등학생 스타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진학할 대학을 발표한다. 그들은 신분만 고등학생일 뿐 실력이나 영향력은 이미 프로급이다. NBA에 진출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친다. 아이비리거와 농구명문대학 엘리트선수의 실력을 비교할 수 없는 이유다.
하버드 농구부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하지만 아이비리그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못해봤다. 같은 아이비리그지만 프린스턴과 펜실베니아는 NCAA 토너먼트 파이널포까지 가봤다. 그런데 하버드는 토너먼트 진출자체가 1946년 딱 한 번이다. 아이비리그가 결성되기 전이다. 하버드는 총 34개 종목의 운동부를 운영하는데 남자농구부만 리그우승을 못해봤다. 린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버드출신 NBA선수는 1954년 에드 스미스 이후 린이 처음이다. 역대를 모두 합해도 단 4명밖에 없었다. 아이비리그출신 NBA선수는 2003년 크리스 더들리(예일)가 마지막이었다. 평균 20점을 넘긴 아이비리거는 70년대 죠프 페트리(프린스턴/평균 21.8점) 이후 40년 만에 등장했다. 뉴욕의 전문직 중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이 많다. 그들은 비싼 NBA티켓을 살 수 있지만 동문을 응원하는 재미는 느낄 수 없었다. 린은 그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린의 활약이 인종을 초월한 ‘광풍’이 된 이유다.
린은 3학년이던 2008-09시즌 평균 17.8점, 5.5리바운드, 4.3어시스트, 2.4스틸로 2년 연속 아이비리그 퍼스트팀에 뽑혔다. 사실 아이비리그에서 평균 30점을 해도 NBA 스카우터의 관심은 받을 수 없다. 린은 농구명문과의 대결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비로소 주목받는다. 린은 보스턴칼리지전에서 27점, 8어시스트를 올리며 팀의 12점차 승리를 이끌었다. 보스턴칼리지는 하버드와 붙기 3일 전 랭킹1위 노스캐롤라이나를 꺾었던 팀이다. 노스캐롤라이나는 2009년 NCAA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부터 스카우터와 농구팬들에게 린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린이 하버드출신이라는 배경은 분명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농구경력에 도움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린의 농구센스(BQ: Basketball Quotient)다. 그는 뛰어난 머리를 농구에서 120% 활용하고 있다. 전술에 대한 이해력이 탁월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응용까지 해낸다. 포인트가드로서 반드시 필요하나 아무에게나 없는 능력이다.
11일 LA 레이커스전에서 린이 38점을 퍼부은 후 ESPN의 휴비 브라운은 “린은 시야가 탁월하고 그 능력을 100% 활용한다. 더블팀이 왔을 때 반대편으로 스핀무브해서 점프슛을 던지는 동작은 전술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 불가능하다”고 호평했다.
린은 2010년 전미랭킹 12위 코네티컷을 상대로 30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경기 후 코네티컷의 명장 짐 칼훈은 “린은 어떤 레벨에서도 뛸 수 있는 선수다. 코트에서 존재감이 정말 훌륭하다. 농구를 알고 한다”고 평가했다.
린은 ‘모범생 농구’라는 하버드의 이미지를 이제 ‘스마트 농구’로 바꿔놓고 있다. 선배의 활약에 자극을 받았을까. 올 시즌 하버드는 21승 3패(컨퍼런스 7승 1패)로 AP전미랭킹 25위에 올라있다. 하버드는 아이비리그 1위를 질주하며 66년 만의 NCAA 토너먼트 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동양인 가드는 성공할 수 없다
‘동양인은 NBA에 진출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90년대까지 정설이었다. 중국대표팀 에이스 후웨이동(198cm)도 못 갔고 한국의 ‘농구대통령’ 허재(188cm)도 못 갔다. 2000년 왕즈즈가 NBA에 진출하면서 비로소 편견이 깨졌다. 2002년 등장한 야오밍(228cm)은 ‘동양인 선수가 NBA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어 멩크 바터(211cm), 이지안리안(213cm)이 등장했다. 하지만 모두 210cm가 넘는 장신들이었다.
2004년 일본선수 타부세 유타가 피닉스 선즈 정규시즌 로스터에 포함됐다. 하지만 175cm의 신장 등 여러 가지 한계로 4경기 만에 방출됐다. 2008년 중국대표팀 쑨유가 LA 레이커스에 입단했다. 206cm의 장신이었지만 실패했다. 가드/포워드는 미국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포지션이다. 동양인은 선천적으로 흑인의 운동능력과 백인의 힘과 체격을 따라가지 못한다. 신장의 이점마저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White men can`t jump’라는 영화(한국개봉명 덩크슛)가 있다. 주인공 둘(흑인1 백인1)은 백인을 얕잡아본 흑인들을 상대로 2:2 내기농구에서 승승장구한다. 실제로 동네농구에서 웬만한 백인은 ‘점프를 못한다’는 이유로 갖은 멸시와 구박을 당한다. 동양인은 말할 것도 없다.
 
 

린도 마찬가지였다. 농구공을 잡을 때마다 인종차별을 당했다. 하지만 실력으로 극복했다. “째진 눈으로 패스를 할 줄 아느냐?”는 놀림에 노룩패스로 화답했다. 노골적으로 동양인을 무시하는 감독도 있다. 남보다 뛰어나게 잘하지 않으면 선수로 뛸 수 없었다. 노력하는 선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린은 2005-06시즌 팔로 알토 고등학교를 캘리포니아州 디비전2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평균 15.1점, 7.1어시스트, 6.2리바운드, 5스틸을 기록했다. 하지만 평가는 냉정했다. 전미유망주를 평가하는 라이벌닷컴은 린에게 별 5개중 0개를 줬다. 평가할 가치조차 없는 선수라는 뜻이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 린은 188cm에 82kg으로 현재(191cm/91kg)보다 깡마른 체형이었다.
UC버클리, UCLA, 스탠퍼드 등 캘리포니아 명문대학들은 린을 외면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텍사스와 함께 농구유망주가 가장 많이 쏟아지는 주다. UCLA는 그들 중 최고선수를 데려온다. 당시 UCLA는 조던 파머의 NBA진출로 가드가 한자리 비었다. 이 때 뽑은 선수가 NBA올스타로 성장한 러셀 웨스트브룩이다. 2학년 데런 칼리슨도 있었다. 린이 낄 자리는 없었다. UCLA는 장학금 없이 농구부에서 뛸 수 있는 Walk-on 제의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상 전력 외로 구분되어 거의 뛰지 못한다.
린에게 가장 적합한 대학은 스탠퍼드였다. 캠퍼스가 린의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스탠퍼드는 운동장학금을 주는 대학 중 가장 공부도 잘한다. 하지만 기회는 없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구단주 조 라콥은 “스탠퍼드는 눈앞에 있는 인재를 못 알아보는 멍청한 실수를 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골든스테이트 역시 린을 방출하는 실수를 했다.
린은 대학진학 당시에 대해 “내 경기는 직접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기록지만 보고 편견이 작용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린은 자신의 DVD를 아이비리그 8개 대학에 보냈다. 그 중 하버드와 브라운에서 스카웃제의가 왔다.
린이 유명해진 것은 존 월 덕분이다. 린은 2010년 서머리그에서 월과 만났다. 드래프트 1순위 월에게 엄청난 관심이 몰렸다. 린은 월(21점, 야투 4/19)과 맞서 13점(야투 6/12)을 넣었다. 특히 운동능력에 의존하는 월과 달리 린의 폭넓은 시야는 대조적이었다. 이 경기는 린이 골든스테이트와 2년 계약을 맺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린은 9일 존 월과 18개월 만에 재대결을 벌였다. 이번에도 득점은 월(29점, 6어시스트)이 높았다. 하지만 린은 23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제레미 린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제레미 린의 부모님은 대만출신이다. 그의 성공은 ‘동양인’의 승리로 비춰진다. 실제로 많은 동양인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린은 미국인이다. 아시아가 아닌 미국농구 시스템이 배출한 선수다.

 
린의 아버지 지밍은 NBA광팬이다. 래리 버드와 카림 압둘자바의 경기를 즐겨봤다. 컴퓨터 엔지니어인 그는 70년대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리고 88년에 린을 낳았다. 린은 5살 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YMCA체육관에서 농구를 했다. 린은 동양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중국음식을 먹고 중국말도 할 줄 안다. 하지만 농구스타일은 미국이다.
린은 오프시즌 하루에 6시간 이상을 개인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에 할애했다. 강인한 신체와 화려한 개인기 없이는 미국선수들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농구를 하는 고등학생 유망주들은 대략 54만 명이다. 그 중 상위 1700등 안에 들어야 NCAA 디비전1에 속한 364개 학교 중 한 곳에 입학할 수 있다. 디비전1에서 동양인선수의 비율은 0.5%다. 린은 이미 하버드 입학만으로 천문학적인 경쟁을 뚫은 셈이다.
우리나라 아마추어선수들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2미터가 넘는 선수도 많지 않다. 한 가지만 잘해도 에이스소리를 듣는다. 그 과정에서 자만심이 생긴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해본 선수가 없다. 프로나 국제무대에서 고전한 후 비로소 한계를 알게 된다. 하지만 개인기를 연습하기에 때는 이미 늦었다. 프로에서 스타가 되면 고액연봉이 보장된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볼 도전정신이 퇴색한다. 린과 같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면 NBA도전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린의 볼핸들링은 다소 투박하다. 하지만 NBA에서 뛰기에 손색없다. 빠른 퍼스트스텝과 돌파스피드는 수준급이다. 노마크에서 덩크슛을 할 수 있는 탄력도 있다. 동양인에서 최고수준이다. 마이크 댄토니 감독은 린에게 많은 프리롤을 주고 있다. 공 소유시간이 다소 길고 턴오버가 많더라도 믿고 맡기는 편이다. 그래야 포인트가드의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 ‘껌 씹으면서 농구 못하는’ 한국에서 나올 수 없는 유형의 선수다.
린이 아시아 혈통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경쟁했다. 린이 올스타에 선발된다 해도 ‘아시아농구가 통한다’라고 할 수는 없다. 린은 언어나 음식 때문에 한 번도 고생한 적이 없다.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에도 능하고 경기 후 인터뷰도 능숙하게 임하고 있다. 감독과 코치의 지시도 100% 알아듣는다. 박찬호처럼 라커룸에서 김치냄새가 나서 동료들과 마찰을 일으킬 일도 없다.
중요한 것은 린의 피부색이 아니다. 우리나라선수와 신체조건이 다를 바 없는 선수가 어떻게 NBA에서 성공했는지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농구가 가진 선수육성 시스템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 편견은 제레미 린이 대신 깨줄 수 없다.
국가대표로 뛸 가능성은 있을까?
제레미 린은 하버드입학시부터 이미 중화권의 스타로 군림했다. 2010년 린이 NBA선수가 된 후 그를 대표팀에 끌어가려는 중국과 대만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린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시민권자다. 처음부터 그에게 조국은 미국이었다. 린은 북경어를 할 줄 알고 중국음식을 즐겨 먹는다. 하지만 그에게 아시아를 대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나 애국심은 기대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중국이나 대만대표팀에서 뛸 경우 여러 가지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아시아바스켓 대만담당기자 크리스 왕은 “대만은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린은 대만여권을 가지고 있다. 대만대표로 뛰는데 법적인 지장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대만은 몇 년 전부터 농구협회회장이 직접 발 벗고 나서 린의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다.
중국도 적극적이다. 중국은 2011년 아시아선수권 우승으로 런던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린이 합류한다면 약점인 포인트가드를 제대로 보강할 수 있다. 미국대표선발이 어려운 린에게 올림픽무대는 매력적인 조건이다. 중국내에서 천문학적인 광고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은 린에게 이미 거액을 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국은 이중국적을 불허하고 있다. 린이 중국대표가 되려면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귀화를 해야 한다. 이럴 경우 부모님의 모국 대만을 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크리스 왕 기자는 “린은 대표팀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중국과 대만이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현실적으로 미국시민권을 포기할 가능성도 적다. 린은 NBA에서 자리를 못 잡더라도 평생 미국에서 살아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린은 대학시절 장래희망으로 목사를 진지하게 꿈 꿀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제레미 린은 현재 황인선수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의 플레이에 열광한다. 그가 특정 아시아 국적이 없는 이유도 크다. 린이 대만이나 중국대표로 우리나라와 상대했다면 지금처럼 좋은 이미지를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NBA는 야오밍 은퇴 후 아시아에서 급격하게 인기가 떨어지는 추세다. 리그파업의 영향으로 NBA의 인력도 대폭 정리됐다.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하지만 닉스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카멜로 앤쏘니-타이슨 챈들러를 영입하고도 성적이 나지 않았다.
이런 위기에 등장한 린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린은 이미 단순한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초월했다. 그는 닉스의 5연승을 주도하며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 just Linsanity!
사진_NBA미디어센트럴, 서정환 기자
2012-02-13 서정환 기자(
mcduo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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