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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린 이야기 #2

제레미 린의 경기(뉴욕닉스에서의 선발 출장)는 지금까지 모두 5경기이다. 그 사이에 뉴욕은 5연승을 거두었고, 매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친 린..
린의 경기 하이라이트는 유투브에서 모두 제대로 볼 수 있는데..
shacmng 로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면, 좀 제대로 된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다. 동영상 편집인으로 생각되는데, 많은 동영상 중 완성도가 있고, 매 경기에 대한 영상이 있다.
shacmng 또는 shacmng lin 으로 검색해 보시길..
아래는 괜찮은 관련 기사 #2..

 
제레미 린과 디앤토니 감독이 쓰는 ‘성공 신화’
기사입력 2012-02-14 07:03


[OSEN=윤세호 기자] “하버드대학을 나온 영리한 선수다. 아마 우리 팀 선수 중 가장 영리할 것이다”.
지난해 12월 27일 미국 프로농구 NBA 뉴욕 닉스의 마이크 디앤토니(60) 감독은 가드진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데려온 포인트가드 제레미 린(23, 191cm)에 대한 평을 이같이 했다. 하버드대학을 나온 농구선수. 그게 린에 대한 정의였다.
물론 디앤토니 감독은 꾸준히 린을 지켜본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디앤토니 감독은 린이 서머리그와 트레이닝 캠프에서 보여준 모습을 기억한다며 “린은 빠르고 수비력도 있다. 무엇보다 공을 돌릴 줄 아는 가드다. 린이 NBA에서 뛰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린은 팀 연습에서 상당한 실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디앤토니 감독이 린에 거는 기대는 팀 내 세 번째 포인트가드 역할, 즉 길어야 경기 당 10분 정도 뛰어주는 일이었다.
린은 지난 시즌 우여곡절 끝에 NBA에 입성,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골든스테이트에는 정상급 공격력을 자랑하는 가드 몬타 엘리스와 리그 최고의 슈터 스티븐 커리가 있었다. 린은 이들에게 막혀 한 경기 평균 10분이 안 되는 출장 기회를 얻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래도 동양인 가드가 NBA에서 뛴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봤다. 그 누구도 린이 한 팀의 핵심멤버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조만간 NBA에서 종적을 감추고 마는 그냥 그런 선수 중 한 명으로 바라봤다.
뉴욕에 합류한 린의 목표 역시 시즌이 끝날 때까지 로스터에 생존하는 것이었다. 뉴욕과 비보장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팀에 생존하지 못하면 1년 연봉 전액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적자생존이 시작됐다. 린은 “백업 포인트가드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지금 나는 경기에 출장하는 12명의 선수 중 12번째 선수일 뿐이다”고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판단했다.
골든스테이트에서 뛸 때 린은 자신의 재능을 코트에서 발휘할 수 없었다. 린의 역할은 주전 가드가 벤치에서 쉴 때 팀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않으며 경기를 진행시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뉴욕 유니폼을 입은 린의 첫 무대는 골든스테이트 원정경기였다. 친정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만 그 날 린에게 주어진 출장 시간은 고작 1분 27초였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린은 1월 18일자로 D리그로 강등됐다. 그러나 린이 NBA에 복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겨우 3일이었다. 린은 D리그 경기에서 트리플더블을 기록, 뉴욕 구단에 무언의 시위를 했다. 그리고 린의 시위는 디앤토니 감독에게 제대로 먹혔다. 린은 D리그에서 돌아온 첫 경기에서 겨우 5분을 뛰고도 8득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올렸다. 디앤토니 감독이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뉴욕은 올 시즌 내내 포인트가드 부재로 고전하고 있었다. 거기에 주요 선수들의 부상까지 겹쳐 그야말로 최악에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결국 린은 1월 29일 휴스턴전부터 팀 로테이션에 합류해 출장시간을 보장받게 됐다.
“내가 린을 의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린이 코트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 지 지켜보기로 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디앤토니 감독은 현역시절 유럽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꼽혔다. NBA에도 진출했고 유럽 무대에서는 소속팀 밀란을 유럽 최강으로 이끌었다. 은퇴 후 바로 지도자가 됐고 지도자로선 선수시절 이루지 못한 NBA 무대에서 성공도 달성했다. 2003-2004시즌부터 피닉스 선스 사령탑을 지낸 디앤토니 감독은 포인트가드 스티브 내시를 영입해 리그 판도를 뒤엎었다.
'7 Seconds or Less'. 디앤토니 감독의 농구는 포인트가드가 중심이 된 극한의 공격 농구다. 런앤건과 적극적인 2대2 플레이를 조합해 7초 안에 오픈 찬스를 만드는 게 디앤토니 감독의 농구철학. 디앤토니 감독의 지도 아래 내시는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됐고 피닉스는 4년 연속으로 승률 65% 이상을 기록했다. 디앤토니 감독도 2005년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2008년 5월. 디앤토니 감독은 새로운 도전을 택한다. 뉴욕과 4년 2400만 달러 계약을 체결, 미국 농구의 중심지에서 피닉스서 이루지 못한 우승을 노렸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도전은 가혹하기만 했다. 지난 세 시즌 동안 무려 8명의 포인트가드가 뉴욕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 중에 내시는 없었다. 뉴욕에서 첫 두 시즌은 승률 3할대에 머물렀고 지난 시즌 겨우 승률 5할을 넘겼다. 올 시즌 뉴욕은 카멜로 앤서니, 아마리 스타더마이어, 타이슨 챈들러로 빅3를 구성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고, 사람들은 내시가 디앤토니 감독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반전은 일어났다. 디앤토니 감독의 해임설이 피어나고 있을 때 디앤토니 감독은 린에게 포인트가드로서 전권을 위임했고 린은 내시와 같은 맹활약을 펼치기 시작한다.
린은 1월 29일 휴스턴전에서 20분이 넘는 출장시간을 기록했고 지난 5일 뉴저지전에서 1쿼터부터 코트를 밟으며 팀의 중심선수가 됐다. 이후 린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펼쳐졌다. 린은 4경기 연속 주전 포인트가드로 출장해 총 109점을 득점, 1976-1977시즌 이후 주전으로 뛴 첫 4경기에서 최다득점을 올린 선수로 등극했다. 앨런 아이버슨, 샤킬 오닐, 마이클 조던을 능가하는 수치다. 그리고 뉴욕은 린이 20득점 이상을 기록한 뉴저지 전부터 5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린은 “솔직히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나 스스로도 내가 이런 활약을 했다는 것에 대해 충격적이다. 그것도 뉴욕에서 이런 플레이를 펼친다는 것은 꿈에서나 상상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현재 디앤토니 감독은 린에 대해 강한 확신을 지니고 있다. 디앤토니 감독은 “린은 우리 팀의 모든 플레이를 쉽게 만들고 있다. 린의 플레이는 진짜다. 린은 탁월한 시야와 스피드, 그리고 경기에 대한 이해력을 지니고 있다. 린의 이 같은 능력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발전될 것이다”고 강조한다.
2년 전 여름 린이 드래프트에서 고배를 마실 때만 해도 아무도 린이 이 같은 활약을 펼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8년 전 디앤토니 감독이 피닉스의 사령탑에 올랐을 때 그 누구도 디앤토니 감독의 극단적 공격농구가 통할 것이라 내다보지 않았다.
물론 아직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아직 실패도 성공도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린과 디앤토니 감독이 올 시즌 NBA의 새로운 성공신화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drjose7@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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