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 2009.08.06 23:18 전체공개

뭐해먹고 살지?

20 : 9980
“혹시 오늘 한국의 직업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근래 교육관련 강연을 하면 꼭 청중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아쉽게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다. 부모들도 교사들도 심지어 교육운동하는 이들도.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그토록 열중하는 아이들의 미래에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우리가 직업이 몇 개인지조차 모르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어쨌거나, 답은 1만개다. 최근 통계청 자료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부모들이 제 아이에게 바라는 직업은 몇 개일까?<고래가그랬어>에서 조사해본 바로는 많이 잡아 20개다.
직업이 1만개라는 건 내 아이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에게 바라는 직업은 고작 20개이니 9980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아이들, 즉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제 직업에 온전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우리 부모는 내가 00가 되길 바랐지만...’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죄라도 지었는가?
쿠바의 청소부는 의사보다 월급이 많고 노르웨이의 버스기사는 대학교수보다 월급이 많다.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월급 따위로 직업의 귀천을 가르진 않지만, 청소부나 버스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여긴 쿠바나 노르웨이가 아니라 한국이라고? 그렇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부모들이 내 아이가 청소부나 버스기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한 한국의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서민 부모들은 울분에 찬 얼굴로 교육 기회의 불균형과 격차를 말한다. 우리는 이른바 일류대 신입생이 해가 다르게 부자의 자식들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아이의 적성이나 재능과 무관하게 20개의 직업들을 독식해가는 그 부자 부모들은 진정 우월한 걸까? 일찌감치 제 부모의 생각을 받아들여 제 적성이나 재능과 무관하게 그런 직업들에 안착하는 그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사람은 두 가지 경로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나는 관계다. 나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관계 속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또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남 보기에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직업이라 해도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그 인생은 불행하기만 하다. 요즘처럼 20개의 직업이 적성도 재능도 아닌 성적순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선 20개의 직업은 오히려 행복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직업들만 강조되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마치 아이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 한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는 사실에 낙심할 이유가 없다. 공부는 여러 적성 가운데 하나이며 공부를 꼭 잘해야 하는 직업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극히 일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잘할 수 있는 다른 게 있다는 말일 뿐이다.
한국에는 1만개의 직업이 있다. 그건 앞서 말했듯 내 아이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며, 내 아이가 그 1만 개 직업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적성과 재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할 일은 되든 안 되든 20개 직업만 생각하며 아이를 닦달하는 게 아니라, 9980개의 직업까지 두루 살피며 아이가 제 적성과 재능에 가장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2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보다는 998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이 훨씬 높다.(한겨레)
-------------------------------------------------------------------------------------------
나는 험한 꼴 한 번 당하지 않고 살았다. 중,고등학교 때 학원, 독서실, 과외, 학교를 제외하면 남는 기억은 거의 없다. 자수성가한 부모님 밑에서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한 적 없이 무난히 잘 컸다. 대학도 그럭저럭 후지단 소리 안 듣는 곳에 들어갔고... 이런 환경이니 나는 제대로 된 좌파가 될래야 될 수가 없다. 왜?? 나한테는 지금 이 세상도 충분히 먹고 살만하거든.... 난 지금 정말 행복하니까..
하지만, 원래부터 이리 행복했던 건 아니다.
직업이 1만개란다. 가질 수 있는 꿈이 1만개나 됐었다는 얘기다. 대학에 들어오기까지 나는 장래희망이 없었다. 어머니는 교육 - 입시에서 점수 잘 따는 문제-에 굉장히 많은 투자를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 당신이 겪었던 처참한 가난은 면할 수 있도록 돈에 대한 갈망만큼은 아주 어릴적부터 질리도록 심어주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세상은 정글이고 강한 놈만 살아남는다는 걸 머리에 새기고 살았다.) 20살이 되도록 단 한 번도 멋진 꿈을 가져 본 적 없는 비참한 인간이 나였다. 목표는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고, 입시가 끝나자 목표가 사라졌다. 아주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버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하고 싶은 일, 설레는 일은 전혀 없었고 기껏해야 학점에나 끄달리며 시간을 보냈다. 무기력하고 시야는 항상 흐렸다. 막막하고 불안하고 답답한데 뭣 때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이렇게 살고 싶진 않은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일상은 늘 반복되었다. 젊은 늙은이, 한번도 젊어보지 못한 늙은이가 되어갔다. 정말 죽고 싶더라. 끔찍하다.
하루 하루가 전쟁인 사람들에겐 내 얘기도 사치겠지만, 어쨌거나 고통은 심각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지루하고 뻔하기만한 삶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싶어 미친짓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수백만가지의 변명과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실행하지 않았던 일들을 무조건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50cc 스쿠터를 타고 200km를 달렸다. 중국과 몽골로 봉사활동을 떠나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일본에 혼자 날아가 단돈 14만원으로 8일을 놀았다. 군대에서 휴가 때마다 히치하이킹으로 집에 왔고 전역 후엔 2주간 무전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통기타를 배우며 무에타이 도장에 다닌다. 17일부터는 국비지원되는 패션디자인 수업과 패션 일러스트 수업, 컴퓨터 일러스트와 포토샵 프로그램 수업을 듣는다. 11월에는 태국에가서 한 2년 간 정식으로 무에타이 선수를 해 볼 생각이다. 매일 매일이 설레고 행복해서 잠자는 시간도 아낀다.
어머니는 미쳤다고 손가락질 한다. 군대서 돈 좀 벌었다고(장교로 다녀와서 한 2500만원 모았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며 갖은 악담을 퍼붓는다. 배를 안 골아봐서 지 잘난 줄만 알고 그렇게 시간 허비하면서 놀고 있다고... 남부끄러워 어디다 말도 못할정도라며 날마다 원망과 한숨을 뭉터기로 실어 주신다. 뭐, 사교육에 때려넣은 돈이 얼만데 이제와서 엄하게 미술이니 기타니, 무에타이니, 패션디자인이니 '돈 안되는 것들'만 하겠다고 설치는 자식놈이 얼마나 미울까만.. 그래도 난 행복하다.
어차피.. 내 인생 내가 사는 거고, 남에게 피해 안주면서, 정직하게... 욕심 안부리고 하고픈거 다하면서 살면 된다. 30살즈음 태국에서 돌아오면 심리상담 공부를 할거다. 처음으로 갖게 된 진지한 내 장래희망. 심리 상담사가 되어서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고 싶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하고 막막하고 좌절스러운 상황에서 이렇게나 기쁘고 감사하고 힘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마음 가짐이 고쳐먹은 것이 내 목숨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1분 1초라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게 바로 가장 큰 시간 낭비이고 인생 낭비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태어난다. 난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죽을 때까지 매 순간 행복하게 살거다.

0

1

댓글1

    댓글 더보기

    삭제 하시겠습니까? 취소 삭제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확인 취소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확인 취소